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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산 스님. 해산을 기리는 모임 제공 |
"명심하거라! 이름 석 자가 세간에 알려지는 날부터
중 노릇은 끝난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해산 스님은 부산을 비롯한 한국 불자들의 불심을 깨운 고승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세간에는 가르침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제자들도 "중은 왔다 간 흔적이 없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따랐고, 스님 자료 상당수도 불에 타 소실된 때문이다.
어느덧 스님이 입적한 지도 34년이 흘러 더 늦기 전에 스님 가르침을 일부라도 남기자는 뜻이 생겨나 '달팽이 뿔로 우는 아이를 달래더라-해산 스님 이야기'란 책이 묶여 나왔다. 스님의 가르침과 일화를 제자와 속가 제자, 신도들의 구술로 금강 거사(63)가 기록한 책이다. 맏상좌 벽담 스님을 비롯한 50여 명이 증언했다.
제자들은 '스님 밑에서 하는 공부는 청소하고 공양 짓고 풀 매고 나무하는 것이 전부'라고 증언한다. 스님 삶이 그러했다. 늘 촌부나 다름없는 차림에 손수 호미나 낫을 든 채로 지냈다. 제자들 간청에도 "시자가 하면 시자의 일이지"란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맞는 일인가를 찾아서 그 일을 한다. 그리고 또 아침을 먹고, 그때에 해야 할 가장 맞는 일을 찾아서 한다. 그러다가도, 하고 있는 일보다 더 맞는 일이 있으면, 아무런 미련 없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그 일로 바꿔서 한다. 그리고 또 점심때가 되면, 그때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한다. 이렇게 매 순간 최상의 맞는 일을 찾아서 한다."
바로 그렇게 "나는 그렇게 매 순간순간을, 아무런 흔들림 없이 살아간다"는 입장이었다.
제자들이 스님 행적이 세간에 오도되는 일을 경계한 듯 이 책은 스님 가르침과 일상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도 만공 스님 등에 올라 소 타는 시늉을 했다 산문출송을 당한 일이나 입적 때 빛을 발한 일 등은 흥미롭다.
한문에 능통하고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스님이지만 가르침은 누구보다 쉬웠다. "지 속에 있는 지 말 놔두고, 와 남의 말을 하노? 지가 무식해서 그렇지! 지가 똑똑한 놈이라면 지 속의 말도 다 못하는데, 와 남의 말을 하겠노?"
스님이 남긴 게송 80수와 법문 13편도 함께 실린 책은 비매품이지만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해산 스님 이야기'에 소개되고 있다.
경북 청도 출신의 해산 스님은 1926년 표충사 박담월 스님 문하에서 출가해 1934년 견성, 만공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만공 회중 입승을 봤고 통도사 보광전 조실, 표충사 주지 및 조실을 지냈다. 부산 광성사에 오래 머물며 부산 불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그래서일까? 해산 스님은 부산을 비롯한 한국 불자들의 불심을 깨운 고승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세간에는 가르침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제자들도 "중은 왔다 간 흔적이 없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따랐고, 스님 자료 상당수도 불에 타 소실된 때문이다.
어느덧 스님이 입적한 지도 34년이 흘러 더 늦기 전에 스님 가르침을 일부라도 남기자는 뜻이 생겨나 '달팽이 뿔로 우는 아이를 달래더라-해산 스님 이야기'란 책이 묶여 나왔다. 스님의 가르침과 일화를 제자와 속가 제자, 신도들의 구술로 금강 거사(63)가 기록한 책이다. 맏상좌 벽담 스님을 비롯한 50여 명이 증언했다.
제자들은 '스님 밑에서 하는 공부는 청소하고 공양 짓고 풀 매고 나무하는 것이 전부'라고 증언한다. 스님 삶이 그러했다. 늘 촌부나 다름없는 차림에 손수 호미나 낫을 든 채로 지냈다. 제자들 간청에도 "시자가 하면 시자의 일이지"란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맞는 일인가를 찾아서 그 일을 한다. 그리고 또 아침을 먹고, 그때에 해야 할 가장 맞는 일을 찾아서 한다. 그러다가도, 하고 있는 일보다 더 맞는 일이 있으면, 아무런 미련 없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그 일로 바꿔서 한다. 그리고 또 점심때가 되면, 그때에 맞는 일을 찾아서 한다. 이렇게 매 순간 최상의 맞는 일을 찾아서 한다."
바로 그렇게 "나는 그렇게 매 순간순간을, 아무런 흔들림 없이 살아간다"는 입장이었다.
제자들이 스님 행적이 세간에 오도되는 일을 경계한 듯 이 책은 스님 가르침과 일상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도 만공 스님 등에 올라 소 타는 시늉을 했다 산문출송을 당한 일이나 입적 때 빛을 발한 일 등은 흥미롭다.
한문에 능통하고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스님이지만 가르침은 누구보다 쉬웠다. "지 속에 있는 지 말 놔두고, 와 남의 말을 하노? 지가 무식해서 그렇지! 지가 똑똑한 놈이라면 지 속의 말도 다 못하는데, 와 남의 말을 하겠노?"
스님이 남긴 게송 80수와 법문 13편도 함께 실린 책은 비매품이지만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해산 스님 이야기'에 소개되고 있다.
경북 청도 출신의 해산 스님은 1926년 표충사 박담월 스님 문하에서 출가해 1934년 견성, 만공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만공 회중 입승을 봤고 통도사 보광전 조실, 표충사 주지 및 조실을 지냈다. 부산 광성사에 오래 머물며 부산 불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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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산 스님의 가르침과 일화를 담은 책 '달팽이 뿔로 우는 아이를 달래더라' 표지. 해산을 기리는 모임 제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