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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海山을 기리는 모임

 ◎ 고등학교 재학 시절, 가족들(부모님과 형님)의 인연으로 스님을 광성사에서 처음 뵈온 후, 그냥 스님이 존경스럽고 좋아서 표충사로 스님을 가끔 만나뵈러 갔습니다.

 평소에 고요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사회에서 1년 직장생활을 한 뒤에 한적한 곳에서 쉬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스님계시는 표충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절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껏 느껴 본 적이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스님께 절을 올리고 말씀을 드리니, “공양간 옆 객실客室에 가서 좀 쉬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객실에 가서 청소하고 군불을 때는데, 눈이 따갑고 방안에 연기가 차서 메케한데도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어서 더 좋았습니다.

 그렇게 스님 곁에 살면서 자잘한 절 일을 도우며 아무 생각 없이 살았습니다.

 어느 날 부전副殿 스님께서 거사는 과거의 일을 언제까지 기억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네 살 때 어르신들 따라서 어디 가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대답하니, 아무 말씀도 않고 가셨습니다. 마치 자기 집 인양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살고 있는 나를 보고는 전생의 인연으로 그러는가 싶어 물었던 것인데, 엉뚱한 대답을 한 것입니다.

 

 ◎ 그렇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스님께서 사회에 나가서 살 생각하지 말고 출가를 해라. 너는 타고 난 수명이 짧아서 사회에 살면 단명短命한다. 출가하는 게 낫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 끓이고 반찬하고 밥하는 공양간의 일부터 시작으로 행자行者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행자 생활은 참으로 고되고 힘들며 잠시도 쉴 틈이 없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스님께서는 항상 새벽 예불하는 3시 전에 법당에 와 계십니다. 그래서 누구도 예불에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양도 대중과 함께 발우 공양을 하시니 잠시라도 허튼짓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스님께서 해 주신 이야기 중에 나옹 스님께서는 젊은 시절 수행하실 때 소변보러 가시는 시간도 아까워 앉은 체로 볼일을 보시면서 정진하셨다고 하시면서, 지금도 경기도 용화사에 가면 나옹 스님께서 앉아서 정진하시던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에 소변의 흔적이 허옇게 남아 있다는 말씀을 해 주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해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니, 잠시도 방일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행자 시절의 어느 날 새벽 예불 시간이었습니다. 동 터기 전의 고요와 대중들의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들이 웅장한 대웅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운데 내가 행선축원문行禪祝願文을 또랑또랑한 소리로 한자한자 읽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벽력같은 스님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하나!” 실수로 한 구절을 빼먹은 것이었습니다. 스님의 고함은 단전丹田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라, 얼마나 큰지 혼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40년이 다 된 지금도, 예불 때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자세를 다시 한 번 가다듬곤 합니다.

스님께서는 꼭 바로 잡아 주어야겠다는 일이 있으면, 즉시 그 자리에서 추호의 망설임 없이 무서울 정도로 나무라십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그때는 눈에서 푸른 불빛이 보인다고 합니다. 너무 매정하다는 생각에 어떤 때는 섭섭해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그런 가르침들은 깊은 무의식까지 파고들어 그 후에는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 스님께서 사회 나가면 단명할 것이니, 항상 부처님 가까이 살면서 부처님 잘 시봉하며 기도 열심히 하고 살거라.’라고 하신 말씀을 좇아, 항상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기도 도량을 찾아다니면서 내 마음만이 아니라 바깥의 도량까지도 깨끗하고 맑게 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해발 800m나 되는 산꼭대기 암자에 혼자 살면서 대빗자루 20개가 다 닳도록 십 리 산길을 쓸고 도량을 청소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불보살의 가피력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도시간에 잠이 들어 있으면 보이지 않는 동자승이 와서 스님, 스님 일어나세요!” 하면서 깨웁니다. 그리고 눈 온 날 길 한 편은 석벽이고 다른 쪽은 깊은 낭떠러지인 비탈길을 절에서 운행하는 봉고차로 신도님을 싣고 가다가, 엔진이 멈춰 서면서 속수무책 한참을 뒤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도, 아무 두려움도 없이 깊은 곳으로부터의 관세음보살을 염 할 수 있어서 무사했던 경험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심신心身의 병마病魔도 무념無念의 기도 삼매 앞에서는 종적을 감춰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부차적인 것일 뿐입니다. 참으로 나에게 중요한 것은 스님의 말씀을 좇아 항상 부처님 가까이서 부처님 시봉 잘하고 아무런 바람없이 열심히 기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 스님께서는 기도가 따로 있나, 지 마음에 있지. 그리고 깨닫는 것도 지만 잘하면 순간에도 깨친다.”고 평소에 말씀하셨습니다.

 70년도,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는 선산 도리사에서 부처님 진신 사리가 발견되어 너도나도 사리 친견하러 간다고 한창 떠들썩하던 때입니다.

 “스님, 선산 도리사에 사리 친견하고 오겠습니다.”하고 말씀을 드리니, “그래, 갔다 오너라.” 하고 승낙하셨습니다. 그래서 갔다 와서 스님께 다녀왔다는 인사를 드리니까, “그래, 도리사에 가서 뭐 봤노?” 하고 물으셨습니다. “부처님 사리 친견하고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좋더냐?” “!” 그런데 스님께서 나를 빤히 쳐다보시면서 니 사리나 봐라!”라고 하셨습니다.

 

相逢誰問還家路   마주 대하고도 누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묻는가?

山自高兮水自流   산은 저절로 높고 물은 저절로 흐르니,

南臺秀竹應知地   남대의 무성한 대나무는 당연히 땅을 알고,

深山窮谷花發     깊은 산 험한 골짜기에 꽃피는 것은,

蝴蝶始應知也     나비가 응당 맨 먼저 알리라.

<해산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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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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