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법좌에 올라 묵연히 계시다 이르시기를……]
법사法師 스님이 자기自己의 아는 주관적 소감을 가지고 법문法門이라고 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허황되게 어리석게 듣고 불법佛法을 공부하여 그런 것이 있구나 하는 것이 예사다.
옛날에는 법사法師가 등단하니 여러대중은 모여서 상주 보살이 나와서 법문法門을 묻는다. 법문法門을 물으면 그것을 말해주고 그것을 물어서 답하고 하면 그만이지 무슨 말이 많겠나.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여러분이 법문法門을 묻지않는 것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법사法師의 법문法門을 내가 능히 다듣고 다알고 있기 때문에 묻지않고 하나는 공부를 아무리 해봐야 언듯 물어볼 만한 용기를 얻지 못하여 못한다.
그렇지만 오늘 이자리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부산釜山이 불국토라고 해도 누가 거짓말이라고 시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법문法門을 하는데 법문法門을 하는데는 법사法師의 법문法門을 듣기 위해서 법문法門을 설說하는 것인지 여러분이 설說하는 것을 정해산鄭海山이가 여기에 앉아서 들을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수 없다.
고기잡는 낚시꾼과 같이 낚싯줄을 던졌을때 고기가 물면 사람이 고기를 낚게 되고 물지 않으면 고기가 사람을 낚는 거와 같다.
오늘 이자리에는 이 법문法門을 입을 열어 이미 알아들을 분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이것을 설교說敎라고 한다.
幻世幻人幻生兒
頭角手足亦分明
이 세상은 꼭두각시 세상이다. 꼭두각시 세상에 꼭두각시 사람에 꼭두각시 아이를 낳아놓으니 수족은 분명하지만 바보짓만 한다.
이 몸둥이를 받아다가 한살에서 칠십이 되도록 끌고 다니는 소소영영한 것을 말하면 모른다.
이세상 사람들은 온갖 것을 다 분별하건만은 이 몸둥이 끌고 다니고 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집을지어 한 세계를 형성하고 하는 이것은 칠백 같이 모른다.
이 세상에서 집을 짓고 아들 딸을 시집장가 보내고 살림사는 그것이 제일 영광스럽고 좋은 일만이 아니다.
참으로 좋은 일이 여기에 있다. 이것을 듣고 누구나 해야 한다.
이것을 듣고 하라고 하니 오늘이 오나 내일이 오나 미래의 세계에서도 도무지 신통한 것이 없다.
똑똑하게 이것이 라고 말을 못한다. 하나 이상한 것이 있다. 이세상에 제일가는 황우같은 장사는 누구와 싸움을 해도 이긴다는 자부심을 가진다.
그러나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자기 마음은 못이겨 낸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그것을 능히 이겨내는 사람이냐? 참고 참고 자기를 참게 할수있는 사람이다.
我師得見練燈佛
多劫曾爲忍欲仙
우리는 불법을 듣고 보고 배운 다음에 불법을 알아지고 불법을 말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성품을 알아서 어디에서나 나서는 자기의 기분을 달랠 줄 아는 그이가 최상승의 역사라고 한다.
고인도 그랬다. 네가 내생來生에 대지 땅덩어리를 웅켜쥐고 흔들려는 힘을 성취할려거든 참아야 한다. 참고 참고 무엇이든지 참아야 한다고 했다.
옛날에 불대와 도제 두형제간이 있었다. 두형제는 한날 한시에 결혼을 했다.
동생 도제는 출가해서 도를 닦아야 한다고 항상 생각을 했다. 형 불대는 동생 부인이 백옥같이 잘났기에 탐이났다. 동생이 출가한 뒤의 일이다.
형 불대는 음침한 생각으로 제수에게 말했다. 도제는 출가했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내하고 살자고 했다. 제수는 거절했다. 불대는 생각하다 못해 도제의 머리를 짤라오면 내 말을 잘 듣겠지 하고 생각하여 백정이를 시켜 도제머리를 잘라오도록 보냈다. 백정이가 도제에게 가서 죽일려고 한다.
도제가 하는말이 여보시오 내가 여기에 올때는 재산을 다 버리고 온 사람인데 내가 무엇이 있다고 나를 죽일려고 하는가? 했다. 백정은 아니다.
우리는 돈 때문에 온것이 아니고 네 머리를 가지고 갈려고 왔다고 한다.
여보시오 저 버러지도 죽이게 되면 그죄가 많다고 하는데 하물며 도를 닦는 나한의 목을 짜르면 그죄를 어떻게 할것인가? 그래도 좋으니 꼭 짤라갈려고 한다. 할수없이 한참 묵연히 참선을 하다가 팔을 쑥 내민다. 팔을 짤랐다. 아파서 견딜수가 없다. 헌데 공중에서 도제야! 팔을 짜른다고 정신을 잃어서야 되겠나.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소리를 듣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다음 이쪽 팔을 내민다. 또 짤렸다. 아파 견딜수가 없는데 공중에서 그팔을 짤렸을 때 네정신을 잘 봐라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치는 데로 하고는 또 이쪽 다리를 쑥 내밀었다. 짤릴때 마다 견디기가 어려워 하는데 공중에서 말한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라 네가 여러 억겁으로 부처님 계시는 곳에서 그를 흘뜯고 비위를 얼마나 거슬렸는데 그것을 아프다고 하느냐? 정신을 잃지 말아라 했다. 그뒤에 이승과를 성취하고 차차 삼승과를 성취하고 사승과를 성취하고 그다음 또 나섰다. 사지를 다 뜯겨 견딜수가 없다. 공중에서는 그래도 정신은 잃지 말라고 한다. 최후 머리까지 모두 짤라서 쌓가지고 갔다.
동생 방에다 팔 다리 머리를 마추어 허수아비처럼 앉혀 놓고는 제수보고 동생이 왔어니 가보라고 했다. 가보니 앉아 있다. 4년 동안이나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세상에 당신이 그럴수가 있읍니까」 여기까지 와서도 선정禪定에 드십니까? 지나간 말 한마디라도 해보라고 한다. 아무말이 없다. 꿀물을 타 가지고 왔서 앞에 놓고는 여지것 선정에 들것이 뭐람 하면서 팔을 흔들었다. 팔이 뚝 떨어진다.
옛날 옛날도 역사가 그와 같거니 하물며, 이세상에 우리가 어디에서 사람이 죽었다 하면 그것을 보고 놀랜다.
우리는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데는 제일 중요한 것은 정신이 흩어지지 않해야 된다. 정신이 흩어지지 않을때 한량없는 보배의 재산을 가지게 된다.
선지식의 법문을 들어면 복이 많다고 한다. 선지식 법문을 한말씀 듣고 집에 가서 생각하고 생각해서 옛날의 성품을 하나하나 고쳐나간다. 이를때 자기 아들 딸들도 우리 부모가 불법佛法을 듣고 저렇게 마음을 개심하니 불법佛法은 참 좋구나 나도 가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아들 딸들이 가만히 보니 우리 부모가 절에 가더니 옛날보다 더 못하다고 한다. 절에 갔다 오더니 고기도 안먹고 오늘은 밥 안먹는 날이다라고 하지 않나 새벽되면 앉아서 중얼 중얼한다. 무엇하는 거냐고 물어면 염불하는 거라고 한다.
초저녁에 다른 사람이 안잘때는 자고 다른 사람이 잘때는 앉아 있고 점점 가족들의 방해만 한다.
우리가 이렇게 미워하는 불법으로 현실에 나아가는 것이 이 사회에서 어떻게 불법佛法을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보겠는가?
여러분이시여!
절 집에서도 그렇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깨달은 분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凡所有相이요 皆是虛妄이로다.
울긋불긋 겉 모양에 속지 말아라.
모두모두 거짓이요 헛된 것일세.
우리는 하루 이틀 가면 이것을 귀로 듣고 외운다. 외우지 만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지각知覺을 않한다. 현실에서 신도님들 보기에 부끄럽고 민망스럽다.
출가한 스님네들이 중앙에서는 싸운다. 왜 싸우는가?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가? 이나라 국가를 위해서 싸우나? 불법을 위해서 싸우는가?
그 싸우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가보면 산중의 절들은 황폐되어 한쪽에는 무너지고 한쪽에는 개가 똥을 쌓게되어 있는데 한곳에 가서 서로가 권리를 뺏을려고 한다. 그것뿐 아니라 어떤 공부하는 스님네는 도인이다 하면 그까지 스님이 무슨 도인이라 지랄병하고 다니는 거지 이렇게 판단한다.
우리는 현재 이 불법을 공부하는 것만을 자랑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것을 극복하고 서로가 헐뜯고 해서는 안 된다.
옛날 어떤 시詩에 보면 저 파리가 임금님의 밥상도 모르고 자기 할아버지 밥상도 모르고 제법도 모르고 살아가는가 하면 실낱같이 생긴 저 못된 모기도 자기 동료의 몸을 뜯고 사는 법은 없다고 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못났기에 서로가 헐뜯고 하는가?
출가한 사람이 불법을 이름도 듣지도 못하고 절에 찾아간 사람에게 「관세음 보살」 해라고 한다. 왜 해야 하는가 하면 「관세음 보살」 하니 모든 네의 번뇌 잡념 망상 진뇌가 일시에 녹아지니 네가 그것을 안해서 되겠는가 한다.
허나 상대방에게 아무리 일러도 누구도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없다. 네속에 불안 불평을 네가 낫게해야 한다. 네가 낫게하되 무엇이 약이냐 하면 「관세음 보살」 하는 것이 약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여기에는 힘을 쓰지않고 서로가 어디에서 많이 먹나 어느절에 신도가 많이 가나 심통이 나서 그기에만 눈을 뜬다.
이렇게 되어서야 어떻게 신도님들이 무엇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불법을 공부할 수 있겠는가? 금강산 돈도암에서 홍도스님이 문턱을 배고 누웠다가 밖을 내다보니 부엌에서 뱀 한마리가 나오더니 그 스님 보고 하소연하는 것 같은 몸짓을 이상하게 하면서 부엌에 있는 재를 물어다가 수없이 갖다 놓고는 꼬리로 글을 쓴다.(글쓴이는 돈도頓道스님)
◎ 金剛山頓度庵記
我昔比丘住此庵
多劫修行近成佛
淸風吹打病中席
一起嗔心受此身
옛날 내가 비구로 이 암자에 주지 였는데
다겁으로 수행하야 성불成佛할 때가 가까웠는데
바람에 문이 닫혀 머리를 치기에
얼마나 아파 놓았는지 진심 한번 내었다가
이런 몸을 받았으니 이글을 멀리 유포하여 다른 사람은 이 업보를 받지 않도록 해 주십사고 했다.
예전에는 이런 경책을 글로 써서 각 절에 붙였다고 한다.
여러분은 아무쪼록 진심을 내지 말아야 할것이다. 우리는 때 아닐때는 참을려고 한다. 때가 왔을때는 못 참는다. 스님네들은 왜 염불하느냐?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극락세계 갈려고 알면서 외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천당에는 가지는 않고 천당에 간다고 말은 한다.
우리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필경 무상도無上道를 성취할려고 하지만 돌아서면 우리는 다 본연本然으로 돌아간다. 건축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사무보는 사람 모두가 바쁘다. 하지만 결국 본연本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변소에 있는 구더기도 깨끗하게 시쳐 놓아두면 그것을 못 잊어서 다시 돌아 가듯이 우리도 마침 그와 같다. 그러므로 이 법문法門을 듣는 이 순간만이 성취라는 것이다.
여러분이시여!
이다음에 법法과 지혜知慧를 성취할려거든 이 순간만이 성취라고 봐야 할것이다. 이다음에 또 성취가 있다고 봐서는 안된다.
우리는 화 안낼때는 화 안낸다. 화 안낸다. 하지만 화가 났을때는 그것을 모두 잊어 버린다. 진심도 또한 그와 같다.
사람이 어찌 진심을 내겠는가? 하지만 진심을 낼때는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도 그 가치가 다 들어나 버린다고 한다.
어리석은 마음을 안낼려고 하지만 어리석은 마음을 낼때는 어리석은 마음을 안낼때와 판이하다. 그러므로 해서 우리가 불도佛道를 성취 못한다.
항상 공부를 하면 진심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가 화를 안낼려고 할때는 화가 날 자리에 가서 화를 안내야 한다. 화가 날때 화를 붙들어서 입을 꼭 다물고 있어면 결국에 나는 수도修道한 사람이 된다.
옛날에 보화존자가 내일 사시에 동문東門에서 열반하겠으니 여러분은 열반제에 오시요 했다. 그분의 염불念佛은 정구업진언만이 염불이 아니라.
明頭來明頭打
暗頭來暗頭打
動頭來動頭打
四面八風連枷打
그분의 행장은 날이 좋으면 나막신을 신고 비가 오면 집신을 질질 끌고 다닌다.
항상 말하는 소리는 들을수 없지만 지견知見이라고 말한다. 밥을 빌로 갈때는 밥을 주시요가 아니고 요령을 흔들어서 「중 밥을 부탁합니다」 한다. 어물거리면 그냥 지나가버린다. 그러던 이가 뜻밖에 동문東門에서 열반에 들겠으니 그리로 오시요 한다. 장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를 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머리라도 빡빡 깎아서면 중이라고나 하지만 머리는 텁수룩 했다.
모두가 가보자 가보자고 한다. 어떤이는 그이를 미친 사람으로 봤다. 그날 첫날 동문東門으로 올라가 보니 보화존자는 보이지 않고 상자만 있었다. 그짓말이다 가자고 하는 사람, 아니다 올것이라고 기다리자고 하는 사람 여러사람이 중얼거렸다. 한 열한시쯤 되어서 곽을 짊어지고 올라온다. 곽을 내려놓고 앉아 있더니 오늘 열반에 들려고 했는데 일진이 시원치 않해서 내일 남南門에서 열반에 들겠으니 내일 그리로 오시오 하고는 곽을 짊어지고 가 버린다.
모여든 사람들 중에서는 저것봐라 미친사람 아닌가 일부는 아니다, 보통사람이 아니다 내일 남문으로 가보자고 한다.
그 다음 날 남문南門에는 어제보다 사람들이 십분의 일이 줄었다. 어제 그때쯤 되어서 곽을 메고 올라온다. 곽을 놓고 앉아 있다가 뻘덕 일어나서는 오늘 열반에 들려고 했더니 오늘도 일진이 좋지 않구나 내일 서문西門으로 오시오 한다. 이때 구경하는 모든 사람이 거짓말이다. 미친 소리다 라고 아우성이다.
어떤 나이 많은이는 아니다 아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일 서문西門으로 가보자고 한다.
염불念佛을 하지 않는 사람이 그런것을 알겠나 그 이튿날 서문에 오는데는 사람들이 천명에서 백명 정도밖에 안되었다. 또 내일 북문北門에 오시오 했다.
그 날은 팔십여명 정도 모여섰다. 나이많은 분이 끈질기게 많이 모였다. 그 앞에서 보화존자는 곽을 내려놓고 앉아 있더니 곽안으로 쑥 들어간다. 그때 별안간 곽이 뜬다. 곽안에서는 요령소리가 철렁철렁 나는데
入槨頌
火湯風搖 天地壞
廖廖長在 白雲間
一聲揮破 金城壁
但向佛前 七寶山
오자고 하는이가 좋아서 신나게 중얼거린다. 「저것봐라 모두가 박복해서 저것도 보지 못한다고 「과거에 보화존자만 그런것이 아니다. 우리도 공부를 했어 이런것을 꿈꾸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건지 알수가 없구나 출가한 이가 염불念佛은 안하고 장사나 돈벌이만 할려고 하니 말이다.
여러분이시여!
여기에 묘한 도리가 있느니라 이것이 반야바라밀 도리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든 발심해서 공부를 하는이는 한쪽에서는 들고 깨칠려 하고 한쪽에서는 안깨칠려고 하고 싸운다. 우리는 불법을 만나서 좋다고 자랑을 한다.
내가 복이 많아서 내가 여기에 왔다고 한다. 어떤때는 불교가 소용이 있나 라고 말한다. 내가 믿고 믿는거지 누가 믿어라고 해서 믿는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천만가지 중에 무엇을 득得해야 그것이 진실인가를 항상 살펴야 될것이다.
여러분이시여!
예수나 공자는 성인이요 그리고 평민이다. 그래서 자기를 말하고 자기를 칭찬했다. 그런데도 만인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가?
헌데 삼계의 대도사 부처님은 전륜성왕의 아들이요 출가해서 도를 닦아 대도大道를 성취했어니 우리의 스승이라고 말 안할수 있겠나 또 아무리 부처님이 잘 했더래도 내가 잘핸것이 아니라 이 모두 여러분이 잘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한 아들을 보고 저놈은 죽일놈이다 살릴놈이다 라고 말하지만 자기 부모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업보가 지중한 저 중생들은 부모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너희들은 어찌 부모님의 은혜를 값지도 않느냐고 꾸짓지도 않는다. 티끌만한 일이라도 잘한일이 있으면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장하다 착하다 네가 장래 모든 사람들의 밝은 광명이 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을 건네주는 뱃사공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칭찬해 주었을때 소같은 놈도 감복 않할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도 또한 그와 같다.
죄를 지어야 염불念佛하지 않는가? 죄를 안 짓는데 염불念佛은 무엇 때문에 하겠는가? 고 말한다. 죄가 어디 몸에 누룽지 같이 붙어 있는가? 그런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불법을 믿고 염불을 하면 비로소 대장간에서 녹슬은 낫을 빨갛게 달구어 툭툭 치면 새로운 낫이 되는 거와 같이 여기에는 묘법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응이천룡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인비인등신 이러한 종류가 함께 모였다. 여기에는 최상승의 교인敎人만이 모인 것이 아니라 최하 말단 사람도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누가 최상승의 사람이 되고 누가 이 가운데 최하 말단의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모두가 최하 말단의 사람이라고 알아야 할 것이다.
최상승의 사람은 가치가 있고 최하 말단의 사람은 가치가 없는 줄로 안다. 만약 누가 여기에서 우리를 보고 치욕감을 준다면 우리는 당장 진심이 나서 야단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당신이야 말로 극락세계에 갈 사람이요 그리고 극락세계로 갈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하면 여기에 누가 화낼 사람이 있겠는가 화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시여!
지옥과 극락에 가는데도 아무나 가는것이 아니다. 현실에서 증명할수 있고 현실에서 눈으로 역역히 볼수가 있다. 사람이 집도 없고 돈도 없고한데 죄를 지어 감옥소에 가면 밥도 주고 돌집에 있게되니 나도 그렇게 해보자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장하다, 착하다.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해도 영산회상에 간다고 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이미 선지식을 다 친견하고 좋은 법문 듣고 우리도 선지식을 말할수 있는 사람이되었다.
우리는 너무도 장하다고 알아야 할것이다. 저 부처님이 어떻게 위대하다고 하는가? 모든 원망과 괴로움은 내가 다 받고 모든 대접과 칭찬은 모든 대중에게 돌린다고 하니 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정말 위대한것이다.
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
세상의 온갖 생각 다 알아내고
바닷물 한모금에 마실수 있으며
허공을 셈하고 바람을 얽어도
부처님 참공덕은 다 알길 없네
말도 아니고 문자도 아닌 법문이 하나 있다.
[주장자를 들어 세 번 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釜山太和禮式場
護佛法會
1979年 10月 14日
'해산스님 법어집 (원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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