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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海山을 기리는 모임

<4>

 

 [법좌에 올라 묵연히 계시다 이르시기를……]

 

 과거 구봉선사 탁발하는 도리를 아는가?

 어떤 것을 탁발이라고 하는가 하면 나가서 문전행각 하는것을 말한다.

 하지만 구봉선사의 탁발은 그것과 다르다.

 여러분은 구봉선사의 탁발에 대해서 어떻게 발우를 내밀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여러분은 그 발우 내민것을 다 알 것이다.

 해산海山 스님은 이렇게 밖에 할수없지!

 「내 놔라…… 무엇을 내 놔라고 하는 것일까?

 날씨가 너무 장마가 져서 그래도 오늘 날씨는 쾌청했어니 여러분의 그 마음도 또한 그럴 것이다.

 우리가 마음이 어디에 있어서 답답하고 깨끗해지겠나, 경전에 말씀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하며,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고 했으며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법문도 말도 많다.

 日暖鷄上樹 天寒鴈下水

 일난계상수 천한만하수

 날이 따뜻하면 닭이 나무위에 올라가고

 하늘이 차면 기러기가 물에 내리더라

 설법은 모두가 다 잔소리다. 스스로 설법을 하는 것이다. 설법을 해도 우리가 그 설법을 할지 언정 그 설법을 못듣고 그 설법을 이해 할수가 없어. 현재 우리 대중도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 어른은 어른 아이는 아이데로 각각 자기데로 다 법문을 하고 다니건만 자기가 법문을 하고 다니는 그것을 못듣는다.

 못들었으니 정해산鄭海山 처소에 온다.

 오는것도 여기엔 우리와 같이 동작을 하고 설법을 듣고 설법을 하고 해도 못듣는다.

 그러면 해산海山 스님은 듣는가?

 여러분은 그것을 위주로 하고 왔을 것이다.

 헌데 여러분이 이()를 못들어면 정해산도 이것은 못듣지!

 여러분이 못듣는데 해산海山 스님을 보고 홀로 듣는다고는 말할수가 없다.

 이것은 본래 자문자답自問自答(자기가 묻고 자기가 답하고) 하고 자설자청법自說自聽法(자기가 설하고 스스로 법문을 듣고) 하고 자증자감自證自感(자기가 증득한 것을 자기 스스로 느낀다)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어도 그 감각을 모르는 그와 같아서 오직 이세상에서 음식을 먹어면 그 감각을 아는 분은 누구냐? 오직 부처님 만이 그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감각을 하는데 그 이외 뾰족하고 신통한 말을 들어보자고 여러분은 희망해서 먼 이곳까지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누구나 명철하게 여러분 앞에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 이 현실의 불교인 것이다.

 불교란 어떻게 그런지 자기가 하고 자기가 알고 하되 어디에 가서 말 한마디 할수없고 그 자부심도 가질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눈먼새가 방울소리만 듣고 따라 다니듯이 이리 저리 따라 다니다 보면 어떤때는 우리도 혹 깨친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아주 아무것도 아니고 전혀 흉내 같기도 하다.

 헌데 깨친것 같기도 하고 흉내 같기도 한 이 묘리妙理를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인데 이 묘리를 알려고 하지는 않고 달리 어떤 보람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앉아서 탐구를 하는데 그렇게 보람된 것이 생기지도 않고 보람된 일도 없기 때문에 해도 맛이 없다고 하고 또한 누구를 대해서도 그 맛을 말할수 없는 이 도리道理를 가르쳐 볼려고 하지도 않는다.

 모두다 입다물고 세속에서는 모두가 하면 하는데로 그것만은 아는데 이 불법佛法 가운데 한 일은 하고 해도 여러분 앞에 보람되게 말 한마디 할수없는 이것이 묘한 도리다.

 白草林中 一味新

 백초임중 일미신

 趙州常勸 幾千人

 조주상권 기천인

 백가지 풀속에 한맛이 새로운데

 조주스님은 항상 모든 사람에게 권했더라

百草 : 우리의 천만가지 생각

 나도 또한 그런거와 같이 그 가운데 그맛을 논할때 너도 또한 해봐라 너도 하면 자연히 이맛을 안다.

 이맛은 쓰고 떨고 맵고 짭고 이런 맛은 아니로되 이맛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 타락맛(꿀 아잡이맛)과 같은 맛이다.

 이 맛을 자기도 알고 모든 사람에게 그맛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켜야 한다.

 그맛을 것잡으려고 천신만고 해 가면서 날이 날마다 안고 딩굴고 씨름하면서 앉아 이것은 탐심이요 번뇌요 망상이요 이것을 모두 제거해야 불성이 있는줄 그렇게 안다.

 여러분이시여!

 불성佛性이 그것을 모두 제거한 뒤에 불성이라고 하는것이 아니라

 一切衆生 而爲 樹根하고

 諸佛菩薩 以爲花果.

 일체 중생은 나무 뿌리를 알자고 하고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나무의 과일과 그 잎새와 같은 것이다

樹根 : 백초百草의 뿌리 즉 탐심, 번뇌, 망상등의 근원

 우리의 모든 천차 만상의 분별이 무엇과 같은가 하면 저 나무의 가지에는 큰가지 작은가지 아래로 뻗은것 위로 뻗은것 잎새는 병든것 싱싱한것 천차 만별로 많은 것 가운데 그기에서도 좋은 과일을 맺어 그 나무보다 그 잎새보다 그 과일을 볼때 비로소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을 그것도 자기가 알지 누가 풋감을 먹고 풋감맛이 어떤가? 고 물었을 때 풋감맛이 이렇다고 말할수 없으니 옛조사 스님네도 그랬다.

 너도 한 번 먹어봐라 먹어보면 그 맛을 알 것이 아닌가? 하지.

 과거 모든 조사스님네는 불법을 가르치고 거행법이 그러했는데

 우리는 항상 그맛을 알아서 그맛을 가르치건만 우리가 스스로 그맛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맛은 아주 못써는 거라고 다 버리고 별맛이 있다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니 어렵기만 어렵고 암만해도 소득도 없고 이익이 없다고 한다.

 여러분이시여!

 항상 앉는데 있어서 우리는 이 대중 가운데 염불이 제일이라 하는 사람 기도가 제일이라 하는 사람 계행이 제일이라고 하는 사람 경을 읽은것이 제일이라고 각각 자부하는 것이 제각기 다 있다.

자부심을 다 가지데 그기에서 권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권해야 하느냐?

 일분동안만이라도 서로 앉아야 한다. 앉는것을 자주 자주 가르쳐야 한다.

 누가 선사람이 있나? 앉았건만 전부 앉아야 한다.

 지금 이 앉음이 앉음이 아니라 마음이 형체가 없고 마음은 볼수가 없으니 이것은 영원히 좌라고 하는것인데 : 우리는 이 마음을 가지고 앉아놓으니 자꾸 섰다가 앉았다가 이생각하고 저생각하고 싸움만 하다가 졸음오면 졸음하고 싸운다.

 그렇게 싸우지 말고 졸음이 오면 졸음과 더불어 노니 그도리를 알아야 되며 잡념이 들어오면 잡념을 쫓을려고 하지말고 잡념하고 같이 놀면서 관찰해야 한다.

 나태상이 일어나면 나태상을 쫓을려고 하지말고 나태상하고 부지런히 놀아야 한다.

놀면서 그 나태상의 근원을 잘 알면 이 이름이 명철한 공부라고 한다.

 우리는 항상 그것을 버리고 도와 법을 얻을려고 노력하니 그것이 별 신통한 것이 없다.

 신통한 것은 처음에 벌써 어릴때 저 산 쳐다본 것이 나이 삼십에 봐도 저산 나이 칠십에 봐도 저산 : 산보는 빛깔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그와 같이 우리가 마음이다 마음이다 하는것을 선지식 처소에 가서 물어보니 그 마음을 찾아보라고 한다.

 찾아보는 것이 공부인줄 알고 자꾸만 찾을려고 한다. 찾을려고 하지말고 찾는것이 마음인데 또 찾아지나!

 아내가 찾을려고 하는 이것이 곧 바로 마음이구나! 나중에 마음을 찾다가 마음이 떠오르면 이것은 마음이 아니라 마음의 그림자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제일 미워하는 것이 건망을 지고 산을끼고 물을건너 천신만고 하고 다니다보면 나같은 또 하나가 밉쌍을 지기고 따라 다니지 않나 앉으면 앉고 서면 서고 춤추다보면 춤추고 따라다니면서, 흉내를 내는것을 없앨려고 애를 써다가 나중에 가면 아저놈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고? 저 경계가 내라고 하는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구나? 이렇게 아는 것도 또한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다.

 우리도 또한 내라고 하는것을 제거하지 않고 앞에 나타나는 것만을 제거할려고 하니 그것은 마치 힘만들었지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이 없다.

 과거 조사스님의 말씀에 졸음이 오면 자고 몸이 한가할때는 놀고 싸움할때는 싸움을 하고 화평할때는 화평하니 여기에 묘리라는 것이 있지 그것을 다 무시하고 일없는 데서 공부가 있다고 우리는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 자성自性을 알려고 하는데 앉아보고 누워보고 서보고 가다가 넘어져 보고 뛰어 보기도 하고 해봐야 이것이 뭣고? 하지 가만히 앉아 가지고 이 뭣고? 해봐야 도무지 볼수없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란 주하는 곳이 없는 적 금강경에 이런말과 같이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다.

 뻑뻑이 마음이란 있는데가 없이 내면 그것이 마음이다.

 이런것인데 이 우주공간으로 부터 새들이 숲속에서 재잘거리고 가을에 써늘해 지면 낙엽이 절로 떨어지는 그 소식이 도리인데 오늘이나 내일이나 허공이나 붙들려고 하는거와 같다.

 우리가 조금전에 여러분이 입정入定한다 하면서 죽비 세번을 쳤다.

 입정이 무엇인가?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않고 불법을 배울려고 한다.

 정신을 가다듬어서 죽비를 친다. 죽비를 세번칠때 그소리를 듣고 정신을 가다듬어 얼마 있다가 방선을 한다. 방선을 할때는 죽비를 세 번을 쳐서 자유의 몸에 맡긴다. 묶었다가 풀었다가 하는 것이다.

 이 본래 한소식인데 나같은 이상한 소식을 구할려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하다가 보면 재미가 없어 애라! 경이나 봐라 이다음에 기도나 하지. 출가한 사람은 은 최상승이나 하지 아무나 못한다고 이렇게 말한다.

 하루종일 천배 만배를 해도 저녁에 잘때는 지옥이 겁나고 극락세계가 탐이 나지만 진종일 미친사람 같이 갈팡질팡 하다가 저녁에 잘 때 1초라도 앉아봐라! 앉아보는 그때는 지옥이 겁이나지 않고 극락세계가 탐이 나지 않는다.

 두 가지 모두 해결 다 되어버린다.

 是無等等하며 是無上道是大明呪.

 이 이상은 더 생각할수도 없고 있을수도 없는 도며 무지無知와 몽매蒙昧를 밝혀주는 광명의 주문이다.

 이렇게 일러 두었건만 우리가 스스로 잘못해서 오늘도 그렇거니 내일도 그렇거니 선지식 처소에 가서 법문을 들어면 깨닫는다고 하는데 선지식 처소에 가서 법문을 들어도 깨달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고 우리가 하루 놀다가 온다는 그런 생각이다.

 여러분이시여!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여기에 오면 이 법문하는 가운데 여러말 낱낱이 다 알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이말 가운데 한마디라도 알면 그 이름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그것을 어떻게 깨침이라고 하느냐? 말이 거짓이 아니고 그 말은 진실이고 그 말은 헛됨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시여!

 그 말 가운데 한마디라도 귀에 익게 들어두면 오늘은 몰라도 이다음에는 깨칠 때 아무때 어떤스님이 이런 법문을 하더니 아이런 말이구나! 할때가 비로소 깨침이라고 한다.

 말도 아니고 문자도 아닌 법문이 하나 있다.

 

 [주장자를 들어 세 번 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載藥山 表忠寺 內院庵 第一禪院

護佛法會

197999

Posted by 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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