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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좌에 올라 한참 묵연히 계시다 이르시기를……]
곳곳에서 선지식이 출현해서 고苦에 빠진 우리를 건지려고 천신 만고의 노력을 하고 애를 쓰고 있어도 이 고苦에 빠진 사람은 고苦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영원히 고에서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안타깝구나! 한달에 한번씩 이나마 이곳에 와서 근심 걱정 번뇌 잡념을 모두 다 제하고 벗어나면 별것 없는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덕인다.
입으로는 흔히 말하지만 그 벗어나는 방도를 아는 사람은 참으로 없다.
우리는 그래서 한달에 한번씩 모든 일을 제쳐놓고 여기까지 오는 것이다.
오는데는 쉬운 것이 아니다. 길도 험악하고 길도 멀고 옛날에는 호랑이 담배 먹든 골짜기다.
우리가 좋은 세월을 만나서 여기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오게 되니 이렇게 좋은 세상을 만나도 우리의 그심정은 어째서 그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감돌고 있는지 알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온갖짓을 다하여 근심 걱정 번뇌 잡념 모든 것에서 부터 벗어난 이가 누군가?
삼계의 대도사 부처님만이 오직 그 곳에서 벗어난 분이라고 우리가 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만 한달에 한번씩이나마 그 분의 얼굴이라도 쳐다볼 때 우리는 스스로 모든 잡념과 번뇌·근심·걱정 모든때가 순간적으로 다 사라지지마는 여기에 앉아서 몇번이고 자기집에 왔다갔다 하는데는 아무리 붙들어 봐야 붙들 수가 없다.
이법문을 듣는 순간이라도 몇번이고 자기집에 왕래한다. 이 왕래하는 빠르기가 장수가 팔을 폈다 오그렸다 하는것 보다 더 빠르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신통 자제하건만 이것을 아무도 모르고 과거 삼천년전에 부처님의 위대하고 광명도, 신통도, 광대무변한 그 소리만 우리가 할수있다.
어째서 우리는 과거 삼천년전의 그 부처님 이야기만을 자주들어 낼수 있는가 왜 우리는 그 신통 변화가 그렇게 자유자재해 있건만 이것을 말할 줄 모르고 사는 것일까 우리도 그 부처님 얼굴을 한번 쳐다보는 순간만이라도 그 부처님과 같이 근심, 걱정, 번뇌, 잡념, 공상, 진뇌심, 시기심, 질투심에서 벗어나면 이 시간이 오직 그때다 즉 중생이 부처님의 찰나지에 있게 되는 때다.
이 잠깐 동안 멈추었다가는 그만 삼계에 또 맴돌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나?
일분 동안이라도 죽비 치고 앉아야 할 것이다.
앉는 그 법이 이 세상에서 금으로도 옥으로도 바꿀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괴로움과 모든 잡념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하면 내가 만들어서 일으킨다.
모든 괴로움은 누가 주는것이 아니고 어떤 파란과 재난도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주고 자기가 받는 것이다.
千尺絲綸直下垂 一波纔動萬波水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그래서 우리는 알고 실천에 옮길것이다.
이도리를 천수 만수 명월을 불러도 자기가 자기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
자기 마음의 고향으로 들어가면 들어가는 거기서 모든 팔만사천 법문을 알아야 한다.
과거 부처님도 자기 마음의 고향을 밝혀 말해 놓은것이 팔만대장경이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마음의 고향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지만 그것을 말할줄 모르고 그 어떤 세계라고 표현도 못한다.
그리고 잠간 들렀다가 잠간 또 삼계를 두른다. 어떤것이 삼계냐? 탐심의 세계요 진심의 세계요 치심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탐심, 진심, 허욕의 세계로 돌아서 내내 뺑뺑도니 비유하기로 개미가 채바퀴 돌듯이 그곳에서만 돌게 된다.
그래서 부처님은 항상 그만 돌지 말고 그대로 쉬어 봐라고 한다.
쉬어보니 맛도없고 별것도 없고 불법이 그럴 리가 있나 이렇게만 생각한다.
또 광명도 신통도 묘리도 상단위의 부처님께 찾을려고 한다.
필경 그 부처님께서 찾을려면 이건 마치 점쟁이에 불과한 사람이 된다.
알고 모르는 것 신통 광명 묘리도 다 저절로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째서 갖추어 졌다고 하느냐 하면 화를낸다. 화는 본래 존재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심을 낸다. 선심도 존재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 그때 선심을 일으키고 악심을 일으켜서 그 이름을 설해서 선심, 악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야의 대자비의 배를 타고 저 보리의 언덕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보리 언덕이란 이 방안에서 기억력을 타고 저 언덕에 가는 것이니 이 언덕과 저 언덕이 둘이 아니라.
우리의 한 생각의 의심으로 돌아가면 이 이름이 저언덕이요 한 생각이 일어나는 곳에 있으면 이 이름이 이언덕이니라 그래서 우리는 항상 무엇보다도 불법을 알려고 하거든 자기 마음의 세계의 일을 잘 알아야 하느니라 이것은 스스로 혼자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삼세제불이 증명한 말씀이니라.
마음은 마음으로서 가지가지 법을 내고 마음이 다멸하면 일체법도 또한 그러하다. 우리가 다른것을다 놔두고 삼경에 잠이 깊이 들어 있는데 법을 만져볼 수 있나 눈을 떠서 보면 이것은 하면 되는 법이요 이것은 하면 안 되는 법이요, 이것을 하면 되지 않는 인因이요 이것은 그 인으로 인해서 과果가 있는 것이요 과에 의해서 보報가 되는것이다.
인과응보란 말이 있다. 어떤 것을 인과응보라 하는가?
우리가 장사를 하려고 할때 무슨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 인이 되고 만일 떡 장사를 한다면 떡 장사가 인이요, 떡 장사 하는 것이 과요 결국 얻어지는 것이 보라고 하는 것이다.
선비도 책이 인이요 책에서 떠나지 못하니 과요 학자라고 하는 것이 보다.
그리고 부처님 법 가운데서는 그 누구나가 평등하고 동일하지 누가 많이 알고 적게 아는것이 없다.
외도가 이구동성으로 나는 부처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가짜의 부처의 아들이니라, 과거의 부처님이 판단한 것과 같이 우리의 심리도 판단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법을 모르고 도를 아는 이상에는 도를 얻기를 바라고 법을 말할수 있는가를 말하지만 우리는 모두 불법을 만나기전에 이미 도를 다 알고 법을 말할 수가 있으며 법을 가지고 놀고 도를 가지고 휘롱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인지 명석하게 뿌리를 모르고 오늘날 우리가 살아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처님 법을 만난것만이 위대하며 만났으니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에 부처님이 무엇때문에 집을 버리고 나갔으며 그 어떤 생각으로 공부를 했으며 어떻게 깨달았으며 어떤법으로 중생을 제도했으며 어떤 원으로서 성취했으며 어떤원으로 결국에 열반에 들었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도 항상 원을 가지고 성취를 해야 하지만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그러한 원을 세워서 공부하고 정진하고 깨닫고 일체 중생을 향하여 설법하고 최후의 열반하는 법이 척척 맞는 것이다.
앞으로 삼천년이 지난 후라도 이것은 과거 부처님이 무슨 도리로서 집안을 그리고 일가친척의 오욕락을 다 끊고 모든 고락을 낙을 삼아 출가해서 어떻게 정진했으며 어떻게 깨달았는가? 어떻게 설법을 하며 중생을 어떻게 제도했으며 최후의 열반할 때는 그 경계가 어떠한지, 그것을 만일에 동일하게 정진하여 나 없는 후에도 깨치면 불법은 틀림없이 똑똑하게 맞는다.
그렇치 않고 혼자서 딴곳에 눈을 두고 딴말을 하는 것은 도저히 안된다.
86종의 외도법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모두 불법 가운데 있는 것이다.
어째서 불법 가운데 있다고 하는가?
여러분은 증명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러나 증명 안할수도 없다.
어떤 사람이든 본래 날 때 그마음 부처라는 것을 믿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진실한 말을 하면 긍정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부정을 한다.
도를 알아서 부정을 하고 도를 몰라서 긍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람이 처음에 태어나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 울음 우는 소리가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세상에서 모두가 미친 소리로 내가 제일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과거 부처님도 그렇게 외쳤다고 하니 그건 그런 것이 아니다.
한쪽손은 위로 또 한쪽손은 아래로 가르키니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른뜻이 아니다. 하늘을 가르키고 땅을 가르킨 것은 그성품의 자재한 것을 보인 것이지 하늘은 어디에 있고 땅은 어디에 있어 제일이 있다고 하겠는가? 그본래의 성품이 천상천하에서 제일이라고 외친 것이다.
그러하건만 이 세상에 나오니 이것은 할아버지다, 아버지다, 어머니다, 이것은 며느리다, 동생이다 해서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절대적으로 지배를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해서 이 세상은 혼탁이라는 것이 여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또 저것은 갓난아이요 저것은 여자요, 남자요, 군인이요, 백성이요 저것은 최하말단 공무원이요, 이렇게 천차만별을 정해 놓으니 상대할 때 멸시하고 하시하고 억누를려고 한다.
한쪽에서는 멸시 안받을려고 하고 한쪽에서는 지배할려고 하고 또 다른쪽에서는 안 받을려고 하고 한쪽에는 이렇게 하자하고 또 한쪽에서는 저렇게 하자하고…… 그러므로 이 세계가 혼란하다.
여러분이시여!
모든것이 우리가 한생각으로서 이 세계는 점점 벌어지니, 고조사스님네가 증명 해놓기로 사람이 만일 한생각이 생각없는 데로 돌아가면 그순간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의천상의 걸음을 걷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공부를 할때 처음에 앉으면 입선을 하고 앉는다. 각자가 자기집에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입선으로 이생각 저생각을 다 거두어 생각없는 곳에 들어가면 조용하게 잠든다. 그 잠드는 가운데도 어떤 환상이 일어난다. 환상이 없을때는 이것은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외도법도 아닌 그런곳에 척들어가 살곤 한다.
그러다가 깨어날때는 차차 깨어 한걸음은 열반경에 들고 한걸음 으로서는 사바세계로 나오는 것이 임의 자재하되 모든 사람이 알기를 저거야 무엇을 알겠는가고 이런데 생각을 두게 된다.
공부하는 사람이란 나만 이런것이 아니라 내하고 네하고가 오늘도 틀림없다고 말해야 일반인이 긍정을 한다.
나는 불법을 만난지도 오래고 선정에서 수행하여 나의 듣고 깨달음은 네의들에게 비유할수 없다는 자세로 나올 때 여러분들은 하나도 긍정해 지지 않는다. 그분이나 나나 동일하게 대할 때 그것은 긍정을 하는 것이다.
또 부처님의 제자가 옳은길로 가지 않고 그릇된 길로 가게되면 번뇌가 생겨 모든 질서가 없게되어 그 아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라.
그리고 옛날에 국왕이 도덕이 높은 스님네들에게 도무지 공양을 올릴수가 없어 국사께 물었다. 스님이시여 내가 대중공양을 하려고 해도 대중공양을 올릴만한 공이 없기 때문에 공양을 한번 못 올린다고 했다.
국사가 말하기를 국왕이시여,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 지하 거지에게 공양을 하는데도 그 복이 한량이 없거늘 하물며 출가한 비구나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겠읍니까?
그이가 복이 있고 없고가 아니고 내가 그공양을 하면 그공양한 복과 그이익됨은 한량도 없고 가도 없는 량이라고 했다.
그 법을 듣고 국왕이 삼보께 예하고 대중께 공양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땅에 온사람으로써 어떤것이 위없는 도가 되며 어떤것이 지혜있는 보리심을 닦는 길입니까? 이것을 듣고 이것을 배울려고 온 것이다.
가정에서 보리심을 딲는 법은? 시부모와 남편의 뜻을 얻을려고 며느리가 어질고 착하고 인자하고 겸손해하는 것은 보리심이 될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불법을 몰라도 영상회상에 가서 부처님을 대했을 때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만일에 그렇지 못할때는 영상회상에 가면 부끄러움을 피할길이 없을 것이다.
오늘 여러분이 이더운데 험한 길 몇백리로 온 이 걸음이 아무쪼록 헛되지 않기를 부탁드리며 헛되지 않기위해 집에 돌아가서 아들딸 가정부나 이웃에나 할것없이 오늘 들은 말씀을 잘 전해주어야 할 것이며 입을 꼭 다물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원이차 공덕 보급어 일체아등 여중생 개공 성불하여 지이다.
여기에 문자도 아니요 말도 아닌 법문法門이 또 하나 있다. 잘 살펴라.
[주장자를 들어 세번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載藥山 表忠寺 內院庵 第一禪院
護佛法會
1979年 6月 10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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