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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海山을 기리는 모임

(*선생은 일생一生을 후진양성과 불교포교에 바치셨으며, 스님과의 인연이 깊으신 분이라 스님의 이야기를 많이 갖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의 생전에, 선생과 뜻을 같이하며 가까이서 모셨던 무구無垢 성백천 거사(62), 운여雲如 박중수 거사(59), 두 분의 증언과 인터넷에 올린 글을 통하여 간접적인 방법으로 스님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이 두 분 역시 스님으로부터 계첩戒牒을 받은 스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리고 덧붙여 김원명 거사(53, 경성대 교수)의 부친에 대한 기억을 같이 싣습니다.)

 

무구無垢 거사

 

70년대 초 학생회 수련회에서 해산 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라서, 그런 큰 스님이신 줄 몰랐었는데, 김도완 선생님께서 나의 스승은 해산 스님 한 분 일뿐이라고 하시며 최고最高의 어른으로 경배하는 것을 보고, 정말 큰 스님이신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산 스님께서는 생활 속의 불교, 을 통한 불교를 당신의 삶으로 구현俱現하셨던 분이셨습니다. 항상 앉을 것을 강조하셨지만, 그것은 방 안에 마냥 앉아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무를 하면서, 풀을 매면서 후학들을 지도하셨습니다. 결코, 우리가 알고 있는, 앉아서 머리로 하는 불교를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김 선생님께서는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불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몇몇 도인道人의 도력道力 속에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중생衆生의 일상日常 행위行爲 속에 있다.”고 하시며, ‘소승적 깨달음에 갇혀있지 말고, 중생제도衆生濟度의 바른 의미를 깨우쳐서 그 큰 길로 나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김 선생님께서는 해산 스님의 뜻을 바로 아시고 그것의 실현實現을 위해 한평생을 바쳐서 오직 그 길만 고집스럽게 걸어가신 분입니다.

그리고 종단의 무능과 부패를 지적하시고 사부대중四部大衆이 같은 승가僧伽 집단으로서 서로가 옳은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옳지 못한 것을 보고서도, 그냥 좋은 게 좋다고 두루뭉수리로 넘겨 버리는 것을 원만圓滿이라고 해서는 안 되며, 옳고 그른 것이 이치에 맞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불교의 대중화大衆化와 생활화生活化를 위해서 많은 일을 기획하시고 그것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셨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비전문가인 어린 학생들로 목관오중주단木管五重奏團을 구성하여 찬불가를 보급하면서, 쉽게 접하는 방법으로 불교를 일상 속에 심으려 하셨으며, 실지로 많은 결실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속해서 이끌어 가기 위해, 음대音大 진학 희망자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셨습니다. 또 한편, 실천불교, 이 따르는 불교를 위해 청년 불자들에게 월수입의 10%를 보시하여 기금을 형성하도록 유도했습니다타 종교라 할지라도 좋은 점은 배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적은 돈들이 모여서 당시로는 큰 금액(9000만 원)이 되어 광성사 부지를 확장하는데 큰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면서, “나의 몸을 모교이며 종립학교인, 동국대 병원에 기증하라.” 그리고 빈소를 차리지 마라. 상복을 입지 마라. 곡을 하지 마라.”는 유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년퇴직 후 7년간 택시 운전을 하면서, 학생회 장학금 등을 내시고 남은 돈 1000만 원을 동국대 발전기금으로 내놓으셨습니다.

정말 무소유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신 분입니다.

(* 이 외에도 많은 증언을 해주셨지만, 다른 분들과 말씀이 겹치는 부분은 생략했습니다.)

Posted by 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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