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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海山을 기리는 모임

20 후반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 부산의 소림사 소속 청년 불자들이 매달 둘째 일요일에 표충사로 해산 스님 법문 들으러 가는 모임이 있었는데, 월봉月峰 스님(당시는 거사居士)의 권유로 그 모임에 동참하게 된 것이 해산 스님을 만나 뵙게 된 인연이 되었습니다.

표충사로 스님 법문 들으러 다니던 날들은 정말로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도시에서 자라서 시골을 전혀 몰랐던 처지라, 시야에 들어오는 산천山川의 모든 것들이 가지가지 너무도 경이로운 것들이었습니다. 신선한 공기에 묻어들어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들이키면서, 시골 풍경에서만 느껴지는 꿈 같은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스님 법문을 듣고서 바루 공양도 하며 절이 주는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었다가, 사자평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앉아서 구름 흘러가는 것을 보고 진불암에서 맑은 차 한 잔 마시는 것은 그야말로 학을 타고 나르는 신선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거기에다, 해산 스님은 그냥 인자한 시골 할아버지 같아서 시골집에 놀러 온 듯한 평안平安함을 갖기도 했습니다.

나의 정신세계가 무한히 넓어지고 풍요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당시 종교에 관한 관심과 그에 따르는 갈등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기독교 계통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나왔고, 교회를 상당 기간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리고 불교는 역사 속의 종교이며, 구시대의 신앙 형태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서광이라고 할 만큼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여러 분야의 책들, 특히 문학 철학 종교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헤세의 글에 심취했는데, ‘싣달타를 읽고 인도의 사상에 접하게 되면서 동양의 정신과 철학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책을 찾아서 서점을 전전하다가, 당시에 서점을 운영하고 있던 월봉 거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거사님께서 몇 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법회 참석의 권유를 받아들이게 된 동기가 된 것입니다.

법회에 참석하고부터, 항상 허기처럼 느끼고 있던 가슴 한 켠의 공백空白을 매울 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허전함은 한 마디로 타력他力 신앙으로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불교를 접하면서, 무아無我와 무위無爲 그리고 무상無相과 무주無住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차원에서는 성경을 바로 읽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참실구實參實究를 주창主唱하는 참선을 통하여 성경의 말씀이 더욱 직접적直接的이며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해산 스님께서 하신 경전의 말씀은 바로 나의 말이라는 법문에 이제껏 갖고 있던 모든 갈등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종교 간의 장벽, 각 종교 내부內部의 보이지 않는 갈등들, 그리고 사람과 사람 간의 벽까지 뛰어넘는 참으로 활달하고 자유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습니다.

 

저 건너 산이, 저기 서 있는 나무가, 날아가는 저 새가 항시 설법하고 있건마는, 우리 자신이 모르고 있다. 법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어찌나 바쁜지 들을 틈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신 스님의 말씀처럼, 그 당시의 나로서는 알아 듣지 못 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항상 머릿속에 의문만 잔뜩 품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두레박으로 우물을 길어 올리듯이 하나하나 생명을 갖고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이 많습니다.

시골 할아버지 같은 스님이지만, 그 당시에는 가까이 가서 법을 묻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높은 어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원암에서 어쩌다 스님과 마주하고 앉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냥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사람들이 큰 나무 앞에서 절하면서 정성을 들이는 것을 미신이라고 만 생각하지 말아라. 사람에게 성인聖人이 있듯이, 나무에도 성스러운 나무가 있어서, 사람들이 능히 그 나무를 보고 절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그 씨앗 중 몇 개가 발아하여 나무가 된다. 그 몇 그루 나무 중에서도 몇십 년을 사는 나무는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몇백 년을 사는 나무는 참으로 희귀한 업연業緣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나무는 사람들에게 그늘과 쉼터를 제공하고 장구長久한 세월을 느끼게 하며 신성神聖한 마음과 겸허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무도 놀랐습니다. 유일唯一신앙과 과학적인 신사고에 젖어있다 보니, 절에 오면서 제일 눈에 거슬리는 것이 특히 할머니 신도분들이 돌이나 나무를 보고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미신과 맹목적인 기복신앙을 절에서 수용受容하는 것 같이, ‘왜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일까?’ 하고 스님들을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내 마음을 스님께서 들여다보시고 묻지도 않았는데 답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하신 말씀도 그랬습니다. 그때 나는 입선入禪시간에 다른 사람들처럼 화두話頭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드는 이 뭣꼬?’를 들어봐도, 의정擬情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앉으면 더욱 산란散亂해져서 방선放禪시간까지 앉아있는 그 자체가 힘겨웠습니다.

그래서 자구책自救策으로 생각해낸 것이 관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지만, 앉으면 넓은 바다를 떠올립니다. 온 마음을 집중해서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실지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립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육안으로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바다 전체를 온몸으로 보면서 느낀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바다사이에 놓여있던 뚜렷한 구별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다가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바다가 내 속으로 들어왔는지, 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렸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선명하게 느끼고 있던 라는 놈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라는 개체의식個体意識이 사라져 버린 그곳에는 자연스럽게 고요와 평안이 찾아와 자리합니다. 그러다 바다에 풍랑이 있어 고요가 깨어지면, 태고의 정적靜寂이 머무는 더 깊은 바다의 심연深淵으로 들어가 그것에 스며들어 버립니다. 일찍이 동요動搖라고는 존재한 적이 없는 적멸寂滅의 세계입니다.

이것이 나 혼자만 행하던 관법觀法이었는데, 스님께서 이를 어떻게 아셨는지, “바다의 물들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구름이 되었던 수증기가 맺혀 물방울이 된다. 그 물방울은 비가 되고 눈이 되어 내리고 서로 모여서 작은 내가 되어 흘러내리다 강이 된다. 그리고 여러 개의 강이 흘러들어 다시 바다가 된다. 그래서 바다의 물은 한 모금만 마셔도 전체의 맛, 그 짠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이런 끊임없는 움직임과 변화를 관찰觀察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고요와 평안平安을 관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에 멈추어 안주安住하려 하지 말고 근원으로부터 일어나는 활동活動과 작용作用을 같이 바라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치 봄이 좋다고 봄에만 멈춰있지 말고 사계절을 다 겪어 보아야 한다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모금의 맛에 전체의 맛이 들어있음을 설하신 깊은 법문이었지만, 그때는 그저 스님의 타심통他心通에 입을 다물지 못할 따름이었습니다.

Posted by 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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